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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A처럼 역사적 고전검술 연구하는 단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고류 검술은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동시기 유럽이나 중국, 조선 검술에 비해 특별하게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음.

 

오히려 실제 스파링을 해보면 길고 가벼우며 변칙적인 유럽 롱소드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마찬가지로 일본도도 생각보다 날카롭고 튼튼하지 않다. 일본도의 역사는 크게 에도시대의 시작을 기점으로 고도(古刀)와 신도(新刀)로 나뉘는데, 평화로운 에도 시대에 장식용으로 전락해 일본 내에서도 수수깡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처먹었던 신도(新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시대 내내 실전용으로 사용되었던 고도(古刀)도 유물을 토대로 재현해본 결과에 따르면 외국의 도검과 큰 차이 없는 평균적인 예리함과 내구도를 보여줌.

 

"군기시(軍器寺)에 간직한 왜도(倭刀)는 아무리 하품(下品)이더라도 몹시 날카로우니(甚銳利)[23] 진실로 군국(軍國)의 중한 기구인데 가볍게 화매(和賣)하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성종실록』 1487년 5월 15일

 

단도(单刀)란 왜노들이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그 용법은 좌우로 도약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의도를 숨기니 인력으로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장병기가 항상 짧은 칼에 패배하였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하지만 조선과 중국을 통틀어 일본도와 일본 검술에 대한 고평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일뽕 원종이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기도 함.

 

그렇다면 왜 이런 모순적인 묘사가 보이느냐?

 

답은 의외로 간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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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참찬관(參贊官) 권맹손(權孟孫) 등에게 이르기를, “내 들으매, 중국은 무신(武臣)만이 칼을 차고 시위(侍衛)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종왕(宗王)과 보신(輔臣)이라도 칼을 차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는데, 태종 때에도 찬성(贊成) 정역(鄭易)이 북경으로부터 돌아와서 아뢰기를, ‘중국의 신료(臣僚)들은 모두 칼을 차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하니, 권맹손이 대답하기를, “중국의 제도는 안팎이 모두 큰 칼을 차고 시위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무반 재상(武班宰相)들도 모두 칼 차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심지어 거둥[幸行]할 때에도 별배[伴人]들을 시켜 칼을 차게 하니, 이것은 중국과 매우 같지 않다. 대저 칼을 차는 것은 단지 응변(應變)하자는 것만이 아니고 의식을 위한 것이니, 집현전(集賢殿) 관리들은 옛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하였다.

-세종 14년 임자(1432,선덕 7)  10월13일 (무술)

 

오늘날 중국의 대소 무관(大小武官)이 모두 칼을 차옵는데, 오직 우리 나라의 무관(武官)만이 입직(入直)과 시위(侍衛)할 때에 원래 가지고 있던 병기(兵器)를 지닐 뿐이요, 칼을 아울러 차지 아니하옵니다. 2품 이상의 무관에 이르러서도 별운검(別雲劍) 이외의 무관들은 칼을 차지 아니하여, 역대와 현조정(現朝廷)의 제도에 어긋남이 있사오니, 이제부터는 대소 무관이 입직하는 날에는 모두 칼을 차게 하옵시고, 행행할 때에는 본래 가지고 있던 병기를 가지되, 인하여 칼을 시위하도록 하는 것으로 항식(恒式)을 삼게 하소서. 대소 유신(大小儒臣)으로 무관의 직을 겸한 자도 위의 조항에 따라 칼을 차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14년 임자(1432,선덕 7)  10월29일 (갑인)

 

조선의 경우엔 세종 때부터 이미 무관들조차 칼 차는 걸 부끄럽게 여겨서 시종들에게 떠넘기니까 세종대왕이 강제로 칼을 차게 할 만큼 검을 천시하는 풍조가 나타남. 심지어 이마저도 무관들이 불평해서 성종 때 도로 취소됨.

 

알다시피 조선은 본격적인 성리학 국가였고 사대부들은 태종이 좋아했던 석전과 격구도 사람 다친다며 금지하자고 상소질을 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공공연히 칼을 차고 다니며 뽐내는 건 사대부의 눈에 중2병 같은 짓이었고 검술 역시 쇠퇴할 수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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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길도 절제사 이징옥(李澄玉)이 일찍이 말하기를, ‘환도(環刀) 의 모양은 그 칼날이 곧고 짧은 것이 급할 때 쓰기가 편리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 군기감(軍器監)에서 만드는 환도의 체제(體制)는 장단(長短)이 같지 않으니, 그 적당 여부를 논의하여 아뢰어라."

하니,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마병(馬兵)이 쓰는 환도(環刀)는 길이를 1척(尺) 6촌(寸), 너비를 7푼(分)으로 하고, 보졸(步卒)은 길이가 1척 7촌 3푼(分), 너비를 7푼으로 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문종실록 6권, 문종 1년 2월 25일 갑오 2번째기사

 

게다가 문종 들어 조선군이 기병 위주 편제로 바뀌면서 이징옥의 건의로 환도 길이가 보병용 칼날은 35.638cm, 기병용 칼날은 32.96cm로 마체테나 와키자시급으로 줄어버린다. 거기에 백병전을 담당하던 갑사와 팽배수마저 세조 때 폐지되어버렸고.

 

민간과 군에서 모두 검술을 버려버리니 임진왜란 때 들어서는 조선에 검술이라곤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근데 이건 조선뿐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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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검을 싸움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태종은 검사 일천 명을 두었는데 그 법이 전해지지 않았다. 잔류한 고서에 비결의 노래가 있지만 자세하지 않다. 근래에 호사가를 통해서 그 검보를 조선에서 얻었는데 그 기법과 원리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중국에서 이것을 잃어버리고 사방에서 구하게 되었음은 서역의 운율법과 일본의 상서(尚書)와 같다. 이를 왼편에 모두 실었다."

-무비지(武備志),  1620

 

군중(軍中)의 여러 기예 중 오직 도검법만이 그 전해짐이 적다.

-진기(陣記) 2권 기용(技用)편, 1591

 

옛날부터 전해지지 않는 기예가 세 가지 있다. 갱법, 눈썹 화장, 그리고 검법이다. 갱법은 너무 잔혹해서, 눈썹 화장은 사내답지 못하여서 군자가 행할 바가 아니다. 단지 아까운 것은 검법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구약집(九龠集) 2권, 명 만력 연간

 

조선과 마찬가지로 명나라군도 북방군은 기병 위주 편제였고 남방군은 전란도 없는데다 농민징집병 위주여서 왜구 50명에게 명군 4000명이 썰려나갈 정도로 심각한 군기저하 상태를 보여줌. 검술도 검술이지만 제대로 된 무술이란 게 존재하지 않다시피함.

 

오죽하면 척계광이 왜구한테서 노획한 카게류 검술을 바탕으로 신유도법을 만들어 보급한 뒤에야 검법이 비로소 갖추어지게 됨.

말이 검법이지 이 신유도법은 기술이 내려베기, 올려베기, 찌르기 3개밖에 없어서 무협소설의 삼재검법마냥 극도로 단순한 검법이었다. 진짜 농민병들에게 부랴부랴 가르치려고 급조했다는 티가 팍팍 남.

 

한 마디로 15세기~16세기에 걸쳐 조선과 중국 모두 검술이 사라진 도검암흑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세법이나 형초장검 등의 검술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문서 형태로만 존재했을 뿐 실제로 전승하는 사람은 없었음. 군영에서

는 아예 인지조차 못했고.

 

도검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의 군용 세이버처럼 의례용으로만 존재했을 뿐 제대로 된 검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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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명에서 검술이 천대받은 영향으로는 보통 원나라의 지배 영향 + 대기병전술 위주로의 편제를 꼽는다.

 

알다시피 대기병용 보병전술의 기본은 창이고 도검은 기병이 들거나 보병vs보병일 때만 유효함.

 

일본에서 타치가 사무라이의 상징이 된 것도 기마전에서 보병전 위주로 메타가 바뀌고 난 뒤부터.

 

하지만 공교롭게도 왜란 때 조선 기병과 명나라 기병이 각각 탄금대와 마초 부족으로 박살나면서 검술이 사라진 빈틈을 왜군에게 정확하게 후벼파이면서 일본도와 일본 검술에 대한 환상이 생겨남.

 

그래서인지 그전까지는 그냥 신기한 이국의 산물 정도로 취급되던 일본도가 왜란 기점으로 갑자기 전설의 신검마냥 엄청나게 포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조선과 명의 검술이 군제 변화로 사라진 동안 평균 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일본도가 빈집털이를 존나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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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유럽도 17세기 들어서 실전용 롱소드 검술이 사라지고 결투용 레이피어와 기병용 세이버 검술, 스포츠화된 펜싱만 남게 됨.

 

그러다가 19세기까지 고류의 형태를 온존하고 있던 일본 검술에 된통 당하고 나서는 똑같은 환상을 품게 되고.

 

개화기 당시 유럽인들이 일본 검술을 호평한 기록을 보면 보통 전쟁터보다는 일상에서 유럽인 장교가 사무라이의 암살에 당하는 양상이 많은데 기습적으로 튀어나와서 양손으로 있는 힘껏 내려치는 일본도에 결투나 기병용에 특화된 한손검으로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

 

(참고로 유럽의 결투용 검술은 피 한 방울만 나도 패배로 처리하는 퍼스트 블러드 규칙 때문에 실전과는 좀 많이 동떨어진 형태가 된 지 오래였음)

 

게다가 20세기까지 중세 내려치기와 겹치면서 '무식한 유럽 기사는 검술을 몰라서 검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같은 낭설까지 퍼지면서 유럽 검술은 동양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식까지 생김.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역사적 유럽 검술(HEMA) 연구도 많이 알려지면서 그런 오해는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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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외국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졌던 검술이 일본에서는 별 변화없이 계속 유지되었기에 외국과 일본이 접촉할 때마다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일본도와 검술을 너무 올려칠 필요도, 내려칠 필요도 없다는 재미없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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