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푸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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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지 8살때였나 우리집이 남들과 다르다는걸 친구네 놀러가서 처음으로 알게 될 쯤이였다. 보통 가정집은 다 나처럼 교회에 가정집처럼 꾸미고 살줄 알았거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방도 각자있고 가사를 어머니가 하셨거든. 우리집은 각자 방도 없고 단칸방에서 다섯가족이 살면서 아버지가 목회랑 가사를 같이 하셨다. 초등학교때 보통 자녀가 반장을하면 되게 좋아하실텐데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화부터 내셨었다. 엄마 자리 대신하는데 힘든거 알면서 반장을 하면 어떡하냐고 하셨지. 어릴땐 그게 너무 속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속 많이 아프셨을 것 같다. 아들이 회장해왔다는데 축하보단 화부터 내셨으니까. 근데 그때 이미 우리 어머니는 대소변 조차 가리지 못했다. 씻으시다가 그대로 서서 소변을 보실 정도였으니까 여유가 더 없으셨을 거다.

 

중학교 1학년땐 가정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의지가 되던 형이 군대를 가고 교회 선생님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부터 가정이 많이 기울기 시작했던것 같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누나랑 중학생인 나까지 학비를 보태기엔 많이 어려우셨을거다. 그때 당시에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스키캠프나 친구들이 복싱을 하자는 등 많이 어려운 상황에 애써 스키캠프니 복싱이니 하고싶어도 바람만 있을뿐 말 조차 꺼내지 못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같이 공부를 했었다. 아프신 어머니와 단촐한 단칸방, 교회에서 생활하는게 내심 부끄러웠지만 친구들은 신기하다며 오히려 날 다독여줬다. 그때 참 신기한게 장난끼만 가득했던 친구가 자기도 어머니가 아팠었다고 힘내라고 해준게 매번 생각이난다.


 고등학교가서는 가정통신문이 나올때마다 항상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직 가정이 어려운데 혹시나 또 금액이 많이 나갈까봐, 그 당시 누나는 대학생인데 공부도 잘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본인이 다 해결했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다 마지막 고3때 또다시 반에서 부회장을 하게되었다. 처음 반장 후보에 올랐을때 기쁨보단 두려움이컸다. 또 다시 가족에게 연락하면 뭐라 할까 돈 걱정이 우선이였던것같다. 걱정과 다르게 다행히 그 당시 반장네 어머니가 우리 가족 상황을 아시게되고 최대한 부담이 안가는 선에서 도와주셔서 잘 지냈다.


 학기 초에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꿈은 따로 없었다. 그저 이 가난이 끝났으면 했으니까. 남들처럼 꿈을 가지기엔 학원을 갈 돈도 없었고 내가 뭘 해야할지부터 몰랐으니까. 수능이 끝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동네에 조그만 파스타 집이였는데 처음 근무를 거기서 한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여긴다. 서비스의 기초부터 항상 무언갈 챙겨주시려고 했기에 연락도 가끔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받게된 금액은 60만원정도였다. 처음으로 내가 돈을 벌어 내 돈으로 신발이랑코트를 샀다. 어릴때 형이 의식주는 비싼걸 걸치라했지만 그당시 2만원하던 코트랑 신발을 두개 샀는데도 되게 벅차고부모님한테 처음으로 5만원 용돈도 드려보고 십일조도 6만원이나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푼 한푼이 아까운 시절에 나의 소득을 교회에 낸다는게 참 대단했던것 같다. 


 그렇게 1년여정도를 하고 처음으로 하고 싶은게 생겼다 요리를 하고싶었다. 음식점에서 먹고 나가면서 잘먹었습니다 하는데 내가 조리한것도 아닌데 뭔가 뿌듯하더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대학만 가면 될줄알고 모아둔 돈으로 서류를 넣어서 호텔조리과에 지원했다. 면접보는데 나한테 첫 질문이 자격증 있냐였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그대로 왔다. 그걸공부하러 간거였는데 이미 너무 뒤쳐진건가 싶어 이렇게 된 이상 실전을 하자 라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바로규모가 큰 레스토랑에 지원을 했다. 공항 롯데몰 안에있는 레스토랑이였는데 상당히 크고 일도 고됐다. 진상도 많았고 친구들과 트러블도 많아서 나이 많은 형 누나들 한테도 화 많이냈다. 그럼에도 이해해주고 잘 챙겨주던 형 누나들은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나도 미뤄오던 군대 날짜가 다가오고 머리도 밀고 격려도 받으며 입대했는데, 귀가 조치당했다. 고혈압은 유전때문에 있는걸 알았는데 우울증 증상도 있다더라. 결국 6개월 후 재검 받을 걸 통보받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 때 당시 생각해보면 우울증 증상이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많이 심각한 상태였나보다. 사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으니이상해 보이긴 했을거다. 재검을 받고 4급 판정을 받은 상태로 다시 티지아이에 갔다. 코로나가 터지고 공항에 찾아오는손님이 뚝 끊기자 급여가 많이 줄었다. 그당시 120만원은 받았었던때가 있었는데 그 절반정도를 받았었다. 그러던중에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입원을 하셨었다. 신용카드를 미리 만들어놔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도를 최대로 늘리니 천만원은 되더라.그 후에는 병원비 지불하고나니 당장 다음달 카드값이 밀려 더는 안되겠어서 고정급을 주는 곳을 구해보고자지원한게 국민카드였다. 처음엔 단순한 고객센터 전화받는 업무였는데 어느덧 비대면 심사를 하고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 부서로 갔다. 남자가 전화해서 그런지 그당시 보이스피싱이 유행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화상으로 욕설을 되게 많이들었었다. 그래도 급여는 많이 받았으니까. 그러던중 3개월차에 반복되는 야근과 왕복 2시간반 출퇴근과 함께 스트레스에 지쳐서 그만두었다. 그 후에 잠시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최대 한도 700만원대출가능. 당시 하루종일 욕먹으며 스트레스 받는 내가 한달에 180을 받았으니 상당히 큰 금액이였다. 특별한 서류도 없이 바로 받았다. 처음엔 거액이 들어와 한 2년이상은 넉넉히 사용할 줄 알았다. 허나 내가 간과한것은 집에 생활비를 내가 댈줄은 몰랐을때다. 교회 인원이 10명미만으로 들어가니 아버지의 수입은 없었다.  누나도 대학생활하며 본인것 챙기기도 힘들어보여 말을 못했다. 형은 가끔 맛있는걸 사주긴하지만 돈의 사용처는 잘 몰랐다.  그 후에 얼마 뒤 형도 일을 관뒀다. 공부를 하겠다고 그만두었는데, 이때만 해도 나는 금방 일을 구하고 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취업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다시 구하게 된 직장은 모델하우스였다. 큰 금액을 준다기에 혹해서 갔는데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땅사라 건물사라 윽박지르는데 도저히 안맞았다. 응급실에도 전화가 갔었는데 거기에 왜 사라고 안했냐며 혼나는데 할 말이없었다. 그래서 모델하우스는 3주만에 나왔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것 같다. 


 누나는 교수님의 소개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소득이 생겼다. 아버지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금액을 줬는데 그덕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나도 대출을 받아서인지 카도 한도가 줄어 급전이 필요해 누나에게 이실직고하고 부탁했다. 누나가 고민을 하더니 빌려 주었고, 나에게 구직 활동은 제대로 하고있는게 맞는지 물었다. 차마 할말이 없었다. 입맛에맞는 채용공고만 지원을 했지 무작정 돈 벌 생각은 하지않았다. 나도 소득이 없자 아버지가 신용 대출을 여러번 받으신걸로 가족 생계를 지켜오셨으나 한계가 오셨다. 급한대로 구한게 아웃백이였다. 다시는 서비스직 안하겠다 생각하고 들어간게 아웃백이였다. 처음엔 티지아이랑 너무 달라서 모든게 생소했고 어려웠다. 추천판매부터 업무량등 모든게 어려웠다. 그래도 버티자는 생각에 1년여가량 하니 주변에서 열심히하는애. 라고 다들 생각해주니 그게 뿌듯해서 더 열심히했다. 그렇게 월급을 받는대로 생활비와 대출금 갚는데 쓰니 하루 하루 벌어먹고 살 정도였는데 쉬는날 집에 있었더니 우채국에서 우편이왔다. 형 명의로 2천만원의 대출이 미납이라고 한다. 아버지랑 먼저 확인을 했는데 형은 한동안 휴대폰도안받는다 하더니 숨기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800정도를 갚아줬다. 남은 금액은 형이취업하면  금방 다시 갚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였다. 허나 아직 구직중이다. 나는 돈의 사용처가 궁금했으나 아버지가해결이 된 후 물어보자해서 나는 답답하고 화도 났으나 참고 버텼다. 그게 2년이 되었다. 더는 여력이 안돼서 형한테 처리하라 했으나 무슨 생각인지 해결하지 않아 가끔 찾는 우편이 온다. 이젠 신경을 끄기로 하고 일에 더욱 몰두 했는데, 그때 있었던 매니저 누나들이 참 잘챙겨주고 좋았는데, 인사이동으로 한 누나와 바뀐 새로온 매니저가 너무 일을 안하고 놀길래 점주님이랑 면담도 해보고 매니저한테 반항했더니 사무실로 부르길래 그대로 다투고 당신같은 사람이랑은 일 못하겠다하고 퇴사했다. 후에 들어보니 내가 대들길래 잘랐다고 얘기하고 다녔댄다.  그걸 듣고 얼마나 기가찼는지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일을 쉬고 있는데 누나가 좋은 소식이 있다며 집에왔다. 일찍이 누나는 취업해서 자취를 하고있었는데, 누나가그동안 어머니 병으로 장애우 등록을 해서 SH에서 지원해줘서 이사를 갈 수 있다고 한다. 한달동안 준비를 하고 이사해서 처음 집을 옮겼을때 잠이 오질 않았다. 어릴때부터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이제 진짜 각자의 방이있고 거실이 있는 집이생기니 여행 온것같은 기분이였다. 집에 필요한 물건 중 오래된 물건들은 버리고와서 퇴직금을 털어 정수기 세탁기 등 새로 구매를 다 했다. 아버지 어머니 옷도 사드리고 창문엔 커튼도 달아드렸다. 

 모든게 끝나고 쉬려는데 한동안 두통이 심해 한달동안 타이레놀만 5통을 비웠다. 친구한테 카톡으로 말했거니 당장 병원가래서 갔더니 이석증이 있었다는데 이명이 들리진 않았냐 묻는데 이명은 확실히 없었는데 무슨 이석증이라는거지 하는 생각을 하고있는데, 고글 같은거 끼고 시야를 촬영하는데 초점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동안 몸 상태 신경안쓰고 하루종일 근무하고와서 이삿짐 정리하고 새벽에 자고 다시 출근하는걸 반복해서인지 몸이 많이 지친상태라고 안정을취하라 해서 약먹고 쉬니 금방 나았다. 역시 아플땐 병원부터 가는게 맞는것같다. 


  사실 지금 이순간에도 삶에 대한 미련은 없는것 같다. 이대로 잠들면 그대로 끝난다거나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거 같다. 영화나 드라마보면 아직 한이 많아서 못죽는단데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다만 걱정되는건 부모님을 챙겨줄 사람이 한 명 줄어든다는거다. 글을 남기다보니 문득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칭하는 호칭은 따로 없다는 글이생각났다. 비록 자식이 먼저 가더라도 하루만 슬퍼하시고 놓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버지도 가끔 옛날얘기 해주실때 들어보면 정말 어렵게 사셨던데 가난은 되물림 된다해서 그런지 막내아들한테 항상 미안하다 하시는데 사실 나는 별 생각없다. 그저 남은 여생이라도 편히 지내셨으면 한다.  


 친구들한테도 자세히 못했던 나만 가지고 있던, 맘속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니 생각보다 길게 되었다. 누군가는 아직 니 전체 인생 중 절반도 안온거라 앞으론 좋아질거라 격려하지만, 내 인생이 얼마나 지나온건지는 중요하지않다 그저 얼마가 남았던간에 이제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고 고생많았을테니 앞으로는 좋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도한다. 

  • ?
    익명_94188170 2023.02.10 19:15
    기술을 배워봐요..
    큰 부자는 못되겠지만 밥벌이는 하고 삽니다.
  • ?
    익명_08551638 2023.02.10 22:06
    글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속이 깊고 가족을 사랑하는 상냥한 분이네요
    마음 속 이야기를 생면부지의 그것도 온라인으로 전하는 당신의 외로움이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네요
    당신의 앞날에 이제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네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 있는 사람입니다.
  • ?
    익명_44684271 2023.02.11 09:40
    다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힘들게 살긴 하더라구요.
    물론 잘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게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ㅠ
    저도 부모님 부양 중이고 부모님 빚 떠안고 갚으면서 사느라
    연애나 결혼은 포기하고 살고 있네요.
  • ?
    익명_38803202 2023.02.11 16:12
    많이 공감됩니다. 언제나 건강하구 웃는 날이 많아지길 기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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